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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 닛시(간증 3)조회수 : 279
이종수(joyslee)http://cafe.somang.net/8man/188479

사순절 첫 주일 설교에서 김경진 담임 목사님은 “은혜를 은혜라 말하지 않은 죄”란 제목으로 죽을병에 걸린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수명을 15년 연장해 주셨는데,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가 병들었다가 나았다 함을 듣고 사신들을 보내어 축하하는 글과 예물을 보내왔으나 히스기야는 하나님의 은혜로 병이 나은 것은 말하지 않고 사신들에게 자신의 보물창고와 무기고를 보여주면서 자신의 부요함과 강성함을 과시한 죄를 범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게 한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가정에도 하나님께서 베푸신 기적같은 은혜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데 이제까지는 온 가족이 감사하는 마음으로만 지내왔는데 목사님의 설교말씀을 듣고 우리 가정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성도님들께 나누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늦었지만 받은 은혜의 간증을 나누려고 합니다.


여호와 닛시-1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시편 23편 5

* 육군대학교 합격

1979년도에 전방사단 참모로 보직되어 온 가족이 이사를 하였습니다.
부임한 부대에 교회가 있는데 부대교회라기 보다는 민간교회라고 할 만치 민간인이 많이 모였습니다
. 100평 남짓한 크기인데 교인 수에 비하여 예배당이 협소하여서 늘리기로 하고 영락교회의 지원도 받고 교인들이 헌금도 해서 공병대 장병들의 도움을 받아 200평정도로 증축을 하였습니다빨간 벽돌로 예쁘게 지어서 헌당 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느닷없이 사단장이 목사님을 불러서 천주교 미사를 같이 드리면 어떻겠냐고 물어 와서 목사님은 당신 혼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제직들과 상의 후에 보고 드리기로 하고 제직회를 소집하였습니다


사단장은 교회에 나오는데 세례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참모 직할대장 중에는 장로님이 두 분 있었고집사도 저를 포함해서 5-6명이 되어서 재미있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


지금까지는 천주교 신자들은 2Km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장소에 버스 1대로 이동하여 종교행사를 하였기에,  제직들이 모여 의논을 하니 모두 반대였습니다공병대 장병들이 그렇게 고생을 하며 공사를 하는데 술 잘 먹고 담배 잘 피우는 사람들이 막걸리 한잔이나 담배 한 갑을 사다 주며 격려도 해주지도 않고 밥상 차려놓으니 먼저 수저 들고 앉으려는 격이라고 모두 반대를 하였습니다이보다 더 큰 이유는 우리는 주일학교에서 어린이들에게 술 먹고 담배피우는 것을 나쁘다고 가르치고 있는데 천주교 신자들이 교회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면 교육상 좋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그대로 사단장님께 보고를 드렸더니 지휘관으로서 종교 활동에 대하여 종파간의 원만한 조정을 하지 못하는 데 대한 짙은 아쉬움을 나타내면서 좀 더 연구해 보자고 하였습니


그때만 해도 육군에서는 전군 신자화 운동을 전개하여 1인 1종교 갖기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계급이 높을수록 술과 담배를 자유로이 먹고 피울 수 있는 천주교 쪽으로 많이 가고계급이 낮을수록 개신교 쪽으로 많이 와서 군 계급 구조에 의한 신자의 구성을 보면 개신교와 불교는 피라미드형으로 되어 있는데 천주교는 역()피라미드형으로 되어 있어 장군들 중에 천주교 신자가 상당히 많았습니다

 
 사단의 신부가 사단장보다 높은 분에게 교회에서 미사 드리는 문제가 잘 안 풀린다고 이야기를 하고 높은 분들이 사단장에게 전화를 걸어온 모양이어서 제직회를 마친 후 2.3주 뒤에 교회에서 미사를 드리도록 하라는 일방적인 지시가 내려왔습니다

다시 제직회가 소집되었는데 참모장이 사단장 지침을 받고 왔는지 미사를 함께 드리는 방향으로 유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제직회에서는 계급에 눌려서 미사를 함께 드리는 것으로 종결이 났습니다제직회를 마치고 나서 참모장은 올라가고 참모직할대장들끼리 남아서 대책을 협의하였으나 뾰족한 묘안이 없이 헤어져서 집에 와서 집사람에게 이야기하니 자기가 앞장서서 막아 볼 테니 부대에서 이 문제 때문에 나에게 어려움이 오더라도 참을 수 있겠느냐 하기에 예수님을 위해 순교하는 사람도 있는데 진급 안 되면 제대해서 연탄구루마라도 끌면 되지 않느냐며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라고 하였습니다

 
 한편 사단장에게서 미사를 드려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신부는 천주교 관련 기관에 전화를 걸어 수녀성가대를 초청하고 다른 지역 신부들도 초청하여 거창하게 미사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생각할수록 속이 상했습니다남들이 애써서 지어놓은 예배당을 저희의 소유인양 주인인 우리에게는 한마디 상의도 없이 사단장이 허락했으니 너희들이 아랑곳할 바가 아니라는 식이였습니다.

 
 이러한 신부의 행태(?)를 막아보겠다고 한 우리 집사람이 여자 집사들 10여 명을 동원하여 담요 한 장씩을 가지고 교회에 모여서 교회를 헌당한 감사기도회를 1주일 동안 주야간으로 한다고 공포를 하고 기도를 시작하였습니다이 일이 신부 귀에 들어갔습니다신부가 생각해보니 많은 사람을 초청해서 거창하게 미사계획을 세웠는데 참모직할대장 부인들이 교회에서 데모(?)를 시작했으니 잘못하면 엉망이 되겠으니까 사단장에게 보고하고 연락한 곳마다 전화를 걸어서 취소하였습니다


사단장이 화가 났지요주동자가 부관참모 부인이라고 해서 내가 결재를 들어가면 얼굴은 보지도 않고 결재를 하였습니다이러기를 일주일 가까이 지났는데 서울지역에 근무하는 천주교 신자 장군들이 이 사실을 알고 군단장에게사단장에게 전화를 하기 시작하였습니다주동자인 부관참모를 처벌하라고 하였으나 신앙 문제를 가지고 처벌까지 하기에는 안 되었던지 공사 간에 부관참모와의 대화는 끊어 버렸고 사단장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단장은 부대 운영을 합리적으로 운영하고 성품도 온유하고 도량도 넓은 분으로 사병으로 입대하여 이등병으로부터 상사를 거친 후 준위로 임관하고다시 소위로 임관하여 2성 장군까지 올라온 입지전적인 분으로 사단 참모들이 마음속으로 존경하는 장군이었는데 사단장이 교회를 나오지 않게 되자 목사님이 다시 제직회를 열어서 미사를 드리는 방향으로 토의를 하고 사단장께 보고하고 신부에게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미사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렇게 얼마를 지나서 사단장은 임기를 마치고 교체되었습니다
저에 대한 시련의 시작은 이때부터였습니다

  
새로 부임한 사단장의 종교가 천주교였고, 영세명이 베드로라고 하였습니다사단장이 앞에서는 따뜻하게(?) 잘해 주는데 뒤로는 업무적으로 기얍을 넣기 시작하였습니다매년 전군에 있는 사단이 같은 시기에 작성하여 인쇄하게 되는 작전계획 50**이라는 것이 있는데 대략 500page 정도 되는 것을  2개월 정도 걸려야 인쇄해 오던 것을 참모장이 1주일 만에 해 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지금 같으면 컴퓨터로 작성하여 출력하면 하루 이틀이면 할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육군본부에서 운영하는 인쇄공창이나 지구인쇄소에서 작업을 하는 관계로 육군 규정상에도 47일이 걸린다고 했더니 규정이고 나발이고 못해오면 부관참모 그만두라고까지 하였습니다육군인쇄소에 가서 인쇄소 사병들을 야근을 시켜가며 1일 만에 만들어 가지고 가니 수고했다는 말은 고사하고 47일 걸린다면서 어떻게 1주일 만에 해왔느냐고 도리어 시비를 붙는 것이었습니다사단장이 아무리 업무적인 기얍을 주어도 참모들이 똘똘 뭉쳐 도와주니 못 할 일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육군본부에 들렸더니 병과장이 하는 말이 사단장이 전화가 왔는데 부관참모가 형편없는 녀석이니 교체해 달라고 하는데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묻는 것이었습니다앞에서는 부관참모 최고라고 추켜세우고는 뒤로 뒤통수를 때리는 격이었습니다


조금이라도 잘못하면 언제 무슨 이유로 떨려날지 모르는 판이었습니다

  이때 육군대학에 참모과정이 생기면서 1기생 모집 시험공고가 있었고 각 부대별로 지원자를 파악하고 있었습니다집사람과 전후사정을 이야기한 후 시험을 보기로 하고 지원을 하였습니사단에서 43명이 지원을 하였는데 육군본부에서 심사한 후에 21명만 응시자격을 주고 명단이 하달되었습니다

 
인사참모가 사단장에게 보고를 하니 명단을 살펴보고는 부관참모와 병기근무대장은 주요직위니 부대업무를 보며 공부하도록 하고 나머지 19명은 시험 날까지 휴가를 주어 많은 인원이 합격할 수 있도록 하라는 지시를 하였습니다.


부관병과로 임관하여 인사행정 분야만 근무해 온 저는 적 전술이니작전요무령이니대대전술이니독도법이니대부대 전술이니 하는 것 등등의 전투에 관련된 10가지도 넘는 과목들을 처음부터 공부해야 할 처지에 놓이게 되었습니다인쇄창에 연락하여 공부에 필요한 교범을 구해놓고 공부를 하는데 계산을 해보니 책을 전체적으로 두 번 정도는 읽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그런데 일과가 끝나자 참모장이 불러서 올라가니 바둑장기판을 가져다 놓고 참모들끼리 내기를 하자는 것이었습니다시험 볼 때까지만 모든 모임에서 제외시켜 주기를 말했지만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운동을 한다거나 회식을 한다거나 명목을 달리해서 매일같이 이러기를 계속하면서 공부할 시간을 뺏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 계획했던 대로 두 번은커녕 한 번도 제대로 읽을지가 의문이었습니다. 다급해진 저는 초등학교 3, 4학년인 두 아들에게 기도 부탁을 하였습니다하나님은 어린아이들의 꾸밈없고 순수한 기도를 제일 잘 들어 주신다고 이야기하면서 기도할 때마다 아빠를 육군대학 시험에 합격시켜달라고 기도하라고 했더니두 아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첫 기도에 아빠의 육군대학시험 합격을 빌었고 하루 세 번 식사 기도에도 빠트리지 않았고저녁 가정예배 시간에도 간구를 했고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합격을 빌었습니다집사람은 하나님께서는 무슨 문제가 날지 다 아시고 계실 테니 우리 서방님이 책장을 넘길 때 시험에 나는 곳만 큰 글씨로 보이게 해달라고 기도를 했답니다시간은 흘러서 시험 날이 다가왔습니다.


정작 공부해야 할 저는 4.6배판 크기의 대대전술만 한 번 읽었을 뿐 나머지는 펼쳐보지도 못하고 말았으니 책장을 넘길 때 시험에 나는 문제를 큰 글씨로 보이게 해달라는 집사람의 기도는 이루어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워낙 공부 하지 못했으므로 시험 보는 것을 포기해 버릴 생각도 했으나 집사람이 결과는 하나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하라고 등을 밀어내는 바람에 시험을 보기로 하였습니다시험 장소는 의정부에 있는 고등학교였습니다


아침에 부대 버스를 타니 모두 공부하느라고 면도할 시간도 아끼느라 수염이 텁수룩하니 길어진 모습들이었습니다

지정된 자리에 앉아서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았습니다망망대해에 의지할 것 없이 내버려진 느낌이 들었습니다시험관이 들어와서 시험 문제지를 나누어 주었습니다수험번호와 이름을 쓰기 전 다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우리의 생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아버지께서는 우리의 영까지 주관하심을 믿습니공부를 할 수 없어 공부를 못했습니다시험문제는 보나마나 모르는 것이 대부분일 것입니다영을 주관하시는 아버지께서 제가 시험문제를 읽어 나갈 때 "이것이다"하고 싸인 만 보내주시면 동그라미를 치겠습니다믿사옵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아멘

수험번호와 이름을 쓰고 문제를 읽어 나갔습니다시험문제는 모두 4지선다형(四肢選多型이였기에 읽어 나가다가 "이것이다"하는 생각이 들면 볼 것 없이 동그라미를 쳤습니다


시험은 한번 읽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공부한 것이 없으니 검토할 필요도 없었습니다부대로 돌아오는 길에 떠들썩하니 소란스러운 속에 저 혼자만 외톨이 된 기분으로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집에 들어서니 집사람과 아이들이 반기면서 결과를 물어왔습니다.

모르겠어기도하고 시험을 쳤는데 떨어지면 공부를 안 했으니 당연한 것이고 붙으면 하나님이 붙여주신 것이지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그러고 며칠이 지나갔습니다사단 보안부대장에게 가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근무병이 전화가 왔다고 해서 수화기를 잡고 부관참모입니다” 하니 참모님 축하합니다!!”하는 소리가 고막을 때렸습니다
육군본부 인사담당 장교가 참모1기합격자 명단을 보고 알려 온 것이었습니다
보안부대장을 부둥켜안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습니다집사인 보안부대장도 함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며 집에 전화를 걸어 주었습니다. “여보 합격했어!” 하는 소리만 하고 목이 메어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집사람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고서는 같이 울었습니다.


부대에 들어가니 인사처로 통보가 왔는데 21명 시험 본 중에서 3명이 합격을 하였다고 했습니다사단장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500MD(헬기)를 태워 가지고 여러 곳을 구경을 시켜 주는 등 이전과는 180도 달라지게 대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자기 때문에 당하는 고통을 보셨고 원수 앞에서 면류관을 씌워 주셨습니다저에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할 수 있으므로 공부할 시간도 모두 빼앗아 버리신 것이었습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학교에서 확률을 공부할 때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사지선다형 시험문제를 찍는다면(?) 제일 잘 나와야 25%의 정답이 나온다고 배웠는데 나는 84%가 조금 넘었다고 했습니다.


 진해에 있는 육군대학에 참모1기로 입학한 학생이 120명이었습니다.

대부분이 전투병과로 대대장을 마친 장교들이었고 행정병과는 10여명에 불과했습니다가르치는 것이 싸우는 전술인데 모두 처음 듣는 용어이고 생소한 과목들이었습니다공부 시간에는 교관의 강의를 열심히 듣고집에 와서는 저녁 9시까지만 공부하고 새벽기도를 가기 위하여 9시에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새벽기도를 가서 하나님께 기도하기를 하나님 25% 안에 들도록 지혜와 명철을 허락해 주십시오.” 하는 기도는 매일 빠지지 않고 기도를 하였는데 졸업 성적을 받아보니 30등이었습니다. 120명 중 30등이면 소수점 하나 틀리지 않는 25%였습니다.

할렐루야!!!

 
                                   여호와 닛시 - 2
   좁은 운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태복음 
7장 13-14)

 

* 국방대학원 입교

육군대학을 졸업한 후에 행정학교 교관으로 보직을 받고 근무를 하던 중 국방대학원 학생선발계획이 하달되었습니다전투병과는 많은 인원이 할당되지만 부관병과는 1명 정도 할당되기 때문에 경쟁이 여간 심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와서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무심코 국방대학원 학생선발계획 이야기가 나오니 집사람은 두 말 않고 지원을 하라고 하면서 육군대학 졸업 후 국방대학원도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다음날 출근해서 학처장에게 국방대학원에 추천해 달라고 하니 펄쩍 뛰는 것이었습니다학처장은 ROTC 선배였고 나를 끔찍이도 사랑했습니다고집을 피우며 추천을 해달라고 했더니 퇴근 후에 집에까지 와서 만류하는 것이었습니다이미 마음을 굳힌 나는 학교장 추천을 받아서 육군본부에 서류를 제출하였는데 며칠이 지난 후에 함께 있는 일반출신 임관 선배인 김 중령이 자기도 국방대학원에 입교하고 싶은데 양해를 해 달라고 하기에 그러라고 했더니 육군본부에 가서 서류를 가져다가 자기를 1번으로나를 2번으로 추천서열을 정하여서 공문을 다시 제출하여 버렸습니다


  육군본부에 알아보니 모두 15명이 지원을 하였는데 한 부대에서 두 명이 추천된 곳은 우리 부대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추천서열이 모두 1번인데 나만 2번이란 소리였습니다서열 1번이 많은데 2번을 선발할 이유도 없고 설사 두 명을 선발한다 해도 한 부대에서 모두 선발하지도 않을 것은 불을 보듯 명확한 것이어서 나는 이미 탈락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집에 와서 집사람에게 공연히 국방대학원 이야기를 해서 사람 망신만 시키고 있다고 하면서 싫은 소리를 했더니 하나님께서 틀림없이 입교시켜 주실 테니 걱정을 말라고 하는데 기가 찰 노릇이었습니다.

 
 국방대학원입교는 포기하고서 업무에 충실하고 있는데 육군본부에서 국방대학원 석사과정을 응시해볼 생각이 없느냐고 전화가 왔습니다. 

무슨 이야기냐고 물었더니 소령이하만 지원하도록 되어 있는 교육기간 2년인 석사과정에 금년에만 중령들을 받기로 했다면서 안보과정에 선발될 확률은 전혀 없으니 석사과정에 지원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습니다다음날 대답해 주기로 하고 집에 와서 이야기하니 무조건 지원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관리과정은 교육기간이 1년인 반면에 석사과정은 2년 동안 교육을 받아야 하기에 마음이 내키지 않아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집사람이 하나님께 기도를 해 보고 결정하자고 하였습니다


저녁 가정예배시간에 집사람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좁은 길로 가라고 하셨다면서 석사과정 지원을 종용하였지만 나는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그리고 하나님이 좁은 길로 가라고 하셨다는데 15명 중에서 1명 선발하는 것이 좁은 길이지 지원자가 없어서 응시만 하면 합격할 확률이 있는 석사과정이 좁은 길이냐고 했더니 다시 기도를 해 보겠다고 윗방으로 가 기도를 하고서 내려와서는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는 길이 좁은 길이랍니다” 하는 것이었습니

 
 다음날 출근해서 육군본부 담당관에게 석사과정에 응시를 하겠다고 하고 국방대학원에 가서 등록을 하였더니 석사과정은 필기시험을 치르는데 시험일자가 2일 후였습니다시험과목은 영전공과목논문이었습니다교무처를 나오는데 대위 때 부산에서 함께 근무하던 구 대령을 복도에서 만났습니다국방대학원 교수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너무 반가워서 구 대령 방에 가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다가 이번에 석사과정에 응시하려고 원서를 내고 가는 길이라고 했더니 잠깐 기다리라고 하면서 밖에 나갔다가 한참 만에 돌아와서는 영문을 복사한 것을 두어 장 주면서 영어시험은 이 안에서 날 테니 이것만 공부하고 오라고 했습니다무슨 말이냐고 물으니 지금까지 영어시험은 타임나 뉴스위크지에서 출제를 했는데 이번에는 이런 방향으로 출제될 것 같다며 이것을 중점적으로 공부하라고 해서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집에 돌아와서 영어 공부만 하였습니다.


시험 당일 국방대학원에 가서 첫째 시간에 영어시험지를 받으니 공부한 것은 하나도 나지 않고 새마을 운동에 대해서 출제되어 있었습니다아는 것은 아는 대로 쓰고 모르는 것은 앞뒤 문장을 보아가며 대충 쓰고 나왔습니다


두 번째 시간이 전공과목인데 시험장에 들어가니 5분의 1정도의 자리가 비어있었습니다영어시험을 보고는 자신이 없어 돌아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전공과목의 문제는 근무평정 제도와 경리관계의 문제 중 택일해서 쓰라는 것이었는데 근무평정은 군에서 2년 이상 다루던 것이고 장단점을 너무도 잘 아는 것이어서 별 어려움 없이 써내고 나왔습니다이제는 점심을 먹고서 마지막으로 논문시험이 남았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 갈 곳이 없어서 구 대령 방으로 가니 영어시험문제를 잘못 전해준 죄(?)때문 인지 방에 없었습니다하는 일 없이 방 구경을 하고 있는데 벽에 걸린 액자에 공무원이 가정에서직장에서사회에서 해야 할 일과 버려야 할 일을 적어 놓은 것이 있어서 무심코 몇 번 읽어보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해야 할 일은 가사 돕기일찍 귀가하기내 집 앞 쓸기저축하기맡은 일 충실하기 등이고버려야 할 일은 도박뇌물 주고받기안일무사주의인사 청탁권위주의 등으로 기억되는 것들이었습니다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구 대령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논문시간에 들어오신 교수님이 칠판에 기록한 논문 제목은 국가가 바라는 참 공직자의 상()을 기술하라였습니다구 대령 방에서 읽은 액자의 글을 풀어쓰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며칠 뒤에 발표가 났는데 후보자명단에 들어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알아보았더니 전공과목과 논문은 만점에 가깝게 좋은 점수가 나왔는데 영어가 과락이어서 종합점수로는 상위그룹이지만 탈락이 되었다고 했습니다애꿎은 집사람에게만 싫은 소리를 하였지만 전혀 반응이 없는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 무반응의 이유였습니다


당시의 국방대학원 원장은 천주원 장군이셨는데 장로님이었습니다. 

교학처장으로 부터 석사과정 사정결과를 듣고 나서 교학처장에게 관리과정 선발자에 대한 분석을 지시하였더니 각 군에서 통보된 관리과정 입교대상자를 분석한 결과 평정이 미달 되었거나, 육군대학 성적이 모자라거나아니면 정년이 초과되거나 한 결격사유가 있는 사람이 10여 명이 되었습니다원칙으로 한다면 이 인원은 해당 각 군 본부에다 통보해서 적격자를 다시 받아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국방대학원장이 분석한 내용을 가지고 국방부장관을 찾아가서 이번에 관리과정 입교통보자 중에 결격자가 10여 명인데 석사과정에서 탈락한 인원 중에 아까운 인재가 너무 많으니 대치했으면 좋겠다고 건의를 하여 그 자리에서 국방부장관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 10여 명 중에 제가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최초에 가려고 했던 1년 과정인 관리과정에 입교명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처음부터 작업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1년 과정인 안보과정은 경쟁자가 많고 경쟁에서 떨어질 것을 미리 아시고 인간의 생각으로는 상상도 못 할 방법으로 국방대학원에 입교할 수 있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습니다

할렐루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예레미아 33장 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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